배신자 이야기 엔딩-그리고 그 뒤에 G의 관측서

Bad End - 마음이 얼어붙은 추격자(Chaser)는 악마를 쫒는다.

끝도 보이지 않는 푸르른 숲 가운데, 우뚝 선 검은 바위산 아래, 아무런 특색 없는 평범한 동굴 앞에, 서 있는 낡은 망토를 걸친 한 명의 인물.
후드를 깊게 눌러써 얼굴이 보이지 않는 망토의 인물은 너저분히 널린 도륙 난 사체와 비릿한 피 냄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꿰뚫어보듯 동굴의 어둠 저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윌 오 위스프(Will o' Wisp)"

한참 동안 망부석처럼 서 있던 망토의 인물에게서 새어 나오는 소리는 친구를 부르는 어조의 짧은 읊조림.
차갑고 무뚝뚝한 목소리에 이끌려 살아 움직이는 빛 덩어리, 이른바 '빛의 정령'이라 칭해지는 존재가 소리 없이 나타나 망토의 인물 주변을 맴돌기 시작하면 그제야
망토의 인물은 불길함이 느껴지는 시꺼먼 동굴을 향해 주저 없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망토의 인물이 어둠 속으로 발을 들어놓기 직전, 때마침 불어온 바람 한 줄기가 답답하게 눌러쓰고 있던 망토의 후드를 벗겨 낸다.

감정 없이 가라앉은 하늘빛 눈동자.
바람에 흩날리는 하늘빛 머리카락.
겨울을 연상시키는 외모의 그녀는 <궁사>.

궁사는 유달리 단호해 보이는 모습으로 최후의 악마이자 마왕의 딸인, 마공주 레이나의 거처를 향해 나아간다.

 

마왕은 강했다. 동료 모두가 있는 힘껏 덤벼들었지만 이기는 것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그 무자비하고도 압도적인 강함에 우리들은 차츰차츰 깍여 나갔었다.
그때 마왕의 갑옷에 난, 칼로 벤듯한 가느다란 균열만 아니었으면 쓰러지는 건 분명 우리들 이었을 것이다. 


갑작스레 튀어나온 자그마한 괴물을 한쪽 팔에 달린 쇠뇌를 쏘아 격살.
나타나자마자 비명 없이 죽어버린 괴물을 짓밟고서 앞으로 이동한다.


그날, 검은성의 결전 끝에 마왕을 쓰러트린 그날.
마왕이 죽고 마공주와 배신자가 사라진 그곳에서 우리는 들었다. '진실'을.
허나 나는 믿지 않는다. 마왕이 말한 '진실'을.
그건 분명 거짓이다. 허구다. 조작이다. 악의 대명사인 마왕의 마지막 조롱이며, 허황된 망상이고, 우리를 흔들기 위한 최후의 저주에 불과하다.
분명 그럴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


흐르듯 휘둘러진 가느다란 레이피어에 앞을 막아선 괴물의 팔이 떨어진다. 발목이 잘린다. 목이 갈라진다. 칙칙한 검은 피가 끈적하게 흩뿌려진다.
몸으로 뿌려지는 피는 실프로 간단히 막으며 멈추는 일 없이 전진한다.


하지만 나의 동료들은 마왕의 거짓말을 진실로 받아들였던가.
모두가 망가졌다. 배신자 자식의 친구였던 용사와 현자도, 그를 사랑했던 성녀와 도적도 모두다.
그런 조롱에 놀아나다니 동료였지만 실로 바보 같은 녀석들이다.


꼴에 던전이라고 설치되어 있는 각양각색의 함정들.
윌 오 위스프의 빛 아래 하나하나 해제되고 부서져 나가는 그것들을 뒤로하며 걸어간다.


용사. 마왕에게는 위선자라 불리던 배신자의 절친한 친구.
같은 세계에서 온 세 사람 중 한 명인 그는 모두를, 특히 자기 자신에게 분노하며 미쳐버린체
마왕에게 협조한 인간들과 제어가 풀린 마물들과 마왕의 잔당들을 베고 또 베며 전장을 떠돌고 있다고 한다.


생각보다 깊은 동굴에 짜증이 난다.
하지만 흔들림 없이, 계속에서 들러붙는 마물들을 죽이고 죽이고 죽이며 지나간다.


현자. 배신자와 같은 세계에서 온 또 한 명의 인물. 역시 배신자의 친구였던 그녀는 끝도 보이지 않는 탑에 스스로를 가둔 체 미친 사람 마냥 연구와 실험에 매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마법을 개발했지만, 다른 생각은 모조리 배제한 체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실험만 반복하고 있다.
현재 연구하고 있는 것은 사자소생과 시간 역행 이라는 소문을 바람결에 들었다.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기계적으로 검을 휘두르고 화살을 쏜다.
조금씩 빛을 살라 먹는 어둠 속으로, 멈추지 않고 들어간다.


성녀. 우리 중 가장 어렸던 소녀. 누구보다 배신자를 잘 따랐으며 마지막까지 배신자를 믿었던 그녀는 신전에 틀어박혀 눈물로 하루를 시작하며 눈물로 하루를 마친다고 한다.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 가고 있다는데, 지금쯤이면 죽었을까 싶다.


이제는 마물도 함정도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저 멀리서 철문 하나가 푸른 불꽃 아래 모습을 드러낸다.
어느새인가 사라진 빛의 정령. 허나, 망설임 없이 전진한다.


도적. 언제나 쾌활했고, 배신자를 사랑했던 수인족 여자. 배신자의 배신에 가장 크게 상처받았던 멍청한 여자는 마왕의 '진실'에 다시 한 번 상처 입고,
결전의 날 이후로 사라졌다. 흔적조차 없이 누구에게 말 한마디도 없이 떠나갔다.
참으로 미련한 여자가 아닐 수 없다.

 


"여기가 마지막인가...."

길고 길었던 동굴의 끝. 더 이상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단단히 틀어박힌 철문을 앞에 두고 궁사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분명, 이 앞에는 그가 있다.

이리저리 구멍 뚫리고 찢어진 망토를 벗어 던지며 가볍게 숨을 고른다.
알지 못하지만, 느낄 수 있다. 이는 어떤 무언가로도 설명할 수 없는 확신. 
이제, 마지막이다.

궁사는 어째서인지 제멋대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다독이며 가로막는 철문을 베고 안으로 들어간다.

"윽...."

직후, 시야 가득 쏟아져 내리는 눈 부신 빛에 일순 눈살을 찌푸리며 혹시나 있을 적습을 대비했다.
이내 시력이 돌아오면 보이는 건, 널찍한 공동안의 알 수 없는 복잡한 실험 기기들과 부글부글 끓고 있는 정체불명의 약물들, 그리고 정중앙의─

".....배....신자.."

보랏빛 수상한 액체로 가득 찬 유리관과 그 안에 든 하나의 인영.
순간적으로 크게 뛰는 가슴에 무심결에 중얼거리는 그 이름.
 
배신자.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배신자의 피투성이의 몸은, 비록 온갖 흉터를 안고 있지만 떨어져 나갔던 팔마저 온전히 붙은 체 회복되어
보랏빛의 액체 속에 가만히 뜬 체 평온히 눈을 감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는 건 그저 순간, 정신을 차리고 이를 악문체 레이피어를 뽑아든다.

살아있다? 살아있다고? 그게 뭐 어떤가. 배신자는 어디까지나 배신자. 아버지 같던 스승을 죽이고, 동료를 죽였던 후안무치한 인간. 아니, 쓰레기.
그때 죽지 못했다면,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죽여 주겠다. 반드시 죽일것이다.

"나는 안 믿어. 그딴 거짓말 같은 건 안 믿어. 죽일 거야. 죽인다. 죽여버린다. 죽여....."

흔들리는 마음에 겁먹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살해의지를 주문처럼 되 내였다.
천천히 내딛는 걸음. 마침내 유리관 앞에서, 손에 힘을 줘, 있는 힘껏 레이피어를 휘두른다.

"죽어엇!!!!"
"멈춰─"

하지만 머리를 노리고 달려드는 검은 빛줄기에 반사적으로 궤도를 수정, 날아오는 빛줄기를 베어내며 유리관에서 거리를 벌린다.
이윽고 배신자의 앞, 활짝 피는 어둠과 함께 등장하는 한 여인. 많은 이들이 그녀를 부르기를, 마왕의 딸. 최후의 악마. 악마들의 공주.
마공주─[레이나].

"하, 뻔뻔스럽게도 살아있었군, 레이나! 혼자 살아남은 게 수치스럽지도 않나?!"
"전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으니까."

고요히, 그리고 명확히 답하는 레이나의 무감정한 목소리에 궁사는 순간적으로 이해하고 만다.
허나 궁사는 자신의 마음을 무시하며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

"살아야 할 이유? 핫, 복수? 아니면 다시 마왕군이라도 일으킬 속셈인가?"
"아니, 그야."

단언. 고개를 저은 레이나는 배신자가 들어있는 유리관을 쓰다듬으며 애달픈 얼굴로 말했다.

"그가, 아직 살아있으니까 나는 살아야 해."

궁사는 생각했다.

불쾌하다.

"그의 치료는 이제 다됐어.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깨어날 거야."

궁사는 생각했다.

정말 불쾌하다.

"그의 동료였던 널 죽일 생각은 없어. 그러니 방해 말고 돌아가."

궁사는 생각했다.

매우 불쾌하다.

"애초에 너희들은 그의 앞에 나타날 자격도 없잖아? 그렇게나 매도하고 상처 입혔으면서."
"닥쳐닥쳐닥쳐......닥쳐!!!!!"  

노성과 함께 쏟아지는 화살 다발이 레이나를 향해 쏘아지지만 가볍게 막혔다.

"나타날 자격이 없다고? 웃기는 집어쳐! 이 자식은 배신자다! 스승을 죽이고, 동료를 죽이고, 친구마저 죽이려 들었던 배신자란 말이다!
 나는 마왕의 거짓말 따위 믿지않아. 아직 살아있다고? 그러면 다시 죽여버리겠어!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도록 갈기갈기 찢어버리겠어!"

분노한 궁사의 의지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4원소의 정령이 나타난다.
푸르른 활은 살아있는 듯 스스로 공중에 떠올라 화살을 재고, 레이피어에는 녹빛의 날이 덧씌워지며 다른 한 손에는 검붉은 마력이 흉흉하게 아우성친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네년은 어째서 나를 그렇게 동정하는 눈으로 보는 거지? 죽여버리겠어!!!


격돌하는 두 사람. 형형색색의 빛 무리와 어둠이 길항하는 가운데, 유리관 안의 사내의 손가락이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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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엔딩이 두어개 정도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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