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ols~ 광대 이야기]웃지 못하는 광대 G의 관측서


 옛날, 넓디넓은 하늘 아래 그 어딘가에, 웃지 못하는 광대가 있었다고 한다.

 그 광대는 거짓 웃음을 뒤집어쓰고 세상천지 그 누구보다 흥겨운,
한 편으로는 그 무엇보다 구슬픈 노래와 춤으로 세상을 떠돌았다고 전해진다.

 The Fools~ 광대이야기. 그 첫 번째. 웃지 못하는 광대.
자, 저기 저 어느 한 나그네가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녀를 만난 것은 수많은 우연 중 하나였다-

 흐음....... 너무 진부한 표현인감? 뭐 어때, 그냥 넘어가자고 형씨.

 잉? 네가 뭔데 형씨라고 부르냐고?
 
 아따, 그 양반 별것 가지고 다 시비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하염없이 세상을 떠돌며,
온갖 신기한 이야기를 모으는 객(客)이올시다.

 뭐? 그건 겉으로 봐도 알겠다고? 야 이놈아, 그럼 왜 물어봤어?!!!

 흠흠, 하여튼간에 이야기를 계속하지.

 앞에서 말했다시피 그, 후에 웃지 못하는 광대라고 불렸던 그 양반이 그녀, 얼음공주님을 만난 것은 정말
우연이었어. 그가 아주 우연히, 나들이를 나선 공주님을 보고 첫눈에 반한 것이지.
 
 그러니까 무슨일이 있었느냐 하면.......

 


 그녀를 만난 것은 수많은 우연 중 하나였다.

 더불어 다시없을 행운이었다, 고 생각한다.

 그녀, '하얀 왕국의 웃지 않는 얼음공주님'에 대한 소문은 숱하게 들어봤다.

 뭐냐, 8살 생일 때 '서쪽의 검은 마녀' 에게 웃음을 뺏겨버리고 점차 다른 감정들도 말라버려 지금에 와서는
아무 감정 없는 얼음 꽃이 되어 버렸다던가, 뭐라던가.

 그때는 난리도 아니었어, 웃음을 잃어버린 공주를 본 팔출불 왕씨는 눈이 뒤집혀서 서쪽의 검은 마녀를
잡기 위해 직접 나섰다가 된통 깨져버리고 목숨만 겨우 부지해 돌아왔었지.

 그 뒤에는 당연한 수순으로, 왕은 공주의 웃음을 되찾는 데에 삼 대가 놀고 먹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상금을
걸었고, 그 상금에 눈이 먼 수많은 사람들은 서쪽의 검은 마녀를 잡으러 가거나 공주를 웃겨보기 위해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수도로 몰려가 온갖 재주를 다 부렸지 뭐.

 뭐어,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나? 나는 도전안했냐고?
 
 했을리가 있나, 그때의 내 나이가 몇 갠데.

 그때는 한창 먹고, 자고, 뛰노는 것에만 열중했던지라 나라에 떠도는 소문에 신경쓸틈 없었다고.

 여하튼 내가 그 소문이 무성한 얼음공주님을 만난 것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얼음공주님을 본 것은
하얀 왕국의 수도, 그곳의 시장통이었어. 이리저리 떠돌며 홀로 공연을 했었던 나는 그곳에서도 공연을
해볼까 해서 적당한 무대를 찾아보고 다녔지.

 거참, 한 나라의 수도라면서 뭐 그리 자리가 없는 건지, 웬만한 장소는 이미 선객이 전부 다 차지 하고 있어
뭐 빠지게 고생은 고생대로 다하고, 자리는 자리대로 못 찾고 원.

 그렇게 공연하기 좋은 장소를 찾기 위해 터덜터덜 걸으며 얼마나 돌아다녔던가, 그때! 나는 본 거야!
좌우로 갈라선 인파 사이를 은빛 찬란한 갑옷을 입은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새하얀 드레스로 몸을 감싸고,
얼음공주라는 이명에 걸맞게 무표정하고 도도히, 성을 향해 걸어가는 그녀를!

 아아, 그때의 감동을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까. 마치 따스한 빛줄기가 온몸을 휘감는 것 같았다─ 라고
한다면 개그가 되려나?

 우연히, 짧은 순간, 아주 잠시 공주의 얼굴을 훔쳐본것에 불구했지만, 나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버렸어.
홀딱 빠져버렸다고.

 어엉? 그런데 무엇이 행운이었냐고? 얌마, 세상에 다시없을 미인을 바로 앞에서 보고, 비록 이루어지지 않을
부질없는 꿈이겠지만 가슴 속으로 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 아니고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자, 그 뒤로 내가 무엇을 했을까? 무엇을 했을 것 같아? 당연한 것 아냐?! 공주님을 따라 곧바로 성으로
달려갔지.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지.

 

 "그래, 도전하고 싶다고?"

 힘없는, 이제는 기대조차 안 한다는 기색이 물씬 풍기는 왕의 목소리.

 하긴, 무려 십 년이다. 사랑하는 딸내미가 감정을 잃어버린 지 벌써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웃게 할수 있다고 찾아오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했고, 마녀를 잡으려고 떠난 이들은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왕은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단지 일말의 희망을 포기하지 못한 체 매달릴 뿐이지. 

 "예, 그렇습니다. 왕이시여. 이 비천한 광대가 감히 공주님을 웃겨 보렵니다."

 광대는 크고 과장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하지만, 고개를 너무 숙인 탓에 앞으로 기우뚱, 바닥에
얼굴을 정면으로 부딪치고 만다. 아픈지 얼굴을 감싸며 펄쩍펄쩍 뛰는 광대. 이번엔 무언가 미끄러운 것을 밟고
뒤로 넘어갔다. 뒤통수를 부딪친다. 쾅─ 앞뒤를 부여잡고 데굴데굴데굴.

 하지만, 대전 안 의 반응은 시원찮다. 지겹다는,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왕과 그의 신하들.

 웃음 소리가 없자 벌떡 일어나 시무룩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광대. 축 처진 어깨가 안쓰럽다.

 피식, 그런 광대를 보며 왕은 왠지 자존심 상하게 하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만, 일단 웃기는 재주는 있는듯 하군. 괜히 테스트 한다고 시간뺐길 일은 없겠어. 한 달을 주지,
잘 해보라고 249,321번째 도전자."

 그 목소리에 광대는 언제 시무룩하게 쳐져 있었느냐는 듯, 활짝 웃으며 엉덩이를 뒤로 쭈욱 빼며 고개를
숙였다. 찌지직─ 이번엔 바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쑥스러운지 고개만 들어 머쓱히 머리를 긁는 광대.
이어진 왕의 축객령에 그 자세 그대로 대전을 빠져나갔다.  

 

 땅에 닿을 정도로 숙였던 허리를 곧게 펴고 앞장선 시녀를 따라 걷는다.

 "흐으응~ 이제는 지겹다─ 인가~?"

 무표정하던 왕과 신하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하긴, 10년 동안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개그를 봤다면 잘 웃던 사람도 안 웃게 되겠지.

 그러니까, 비록 그 누구도 웃기지 못했지만, 나는 기죽지 않아.

 내가 누구냐?! 나를 누구라고 보는 거냐?!!

 나는 하늘님을 조롱하고 아랫님을 웃겨 드리며 세상인심 먹고사는 광대이올시다!!!

 이까짓 일로 기죽을 소냐!

 "뭐, 그래도 다음에는 비장의 108개그를 선보여줄까~?"

 하지만, 이렇게 미련을 약간.

 자아, 자아, 자아, 그건 그렇다 치고 이제 공주님을 만나러 가보실까나?

 짤막한 공연의 와중에 찢어졌던 바지는 간단히 수복 완료. 어떻게 고쳤는지는 기업비밀이다.

 공주님을 뵈러 가는 데 찢어진 바지를 입고 갈 수야 없지.
 
 과거는 떨쳐내고 발걸음은 가볍게, 가볍게, 경쾌하게!!

 

 희게 빛나는 은발. 고요히 가라앉은 청안. 고결해 보이는 순백의 드레스로 몸을 감싸고,
얼음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무표정으로 만인을 내려다본다.

 저분이 바로 '하얀 왕국의 웃지 않는 얼음공주님' 그 자체!

 울컥, 하고 치밀어 오는 감동에 몸을 떨며 인사한다.

 아, 잠깐 눈물 좀 닦고.

 "안녕하십니까, 공주님. 이 비천한 광대가 감히 공주님의 웃음을 되찾아 드리기 위해 대령 했사옵니다."

 광대는 똑같은 내용의 공연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광대 퀄리티!!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툭, 하고 떨어지는 광대의 모자. 광대는 당황하며 모자를 주우려 하지만,
모자는 마치 살아있는 양, 광대의 손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간다.
광대의 모자는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뒹굴뒹굴뒹구르르~.
광대는 모자 따라 저리 데굴, 이리 데굴, 데굴데굴데구르르~.
가까스로 모자를 잡아 쓰는 데 성공한 광대. 하지만, 모자는 화가 났는지 광대의 머리카락을 잡아 뜯는다.
아이구, 아프다 아퍼. 

 "......."

 하지만, 공주님이 이 정도 가지고 웃을 리가?

 아무 말없이, 처음 그대로의 표정으로 묵묵히 바라보는 공주님의 시선에는 아무런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다.

 즐거움도, 지루함도, 그 무엇도......

 훗,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어. 이 정도로 함락되서야 내가 곤란하지!

 시간은 많다. 현재로서 유일한 도전자인 나에게는 무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져 있다.

 내 혼을 불태워서라도 웃기고 말리!

 풀죽은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쪽쪽 빨며 주위를 둘러보던 광대는 다시 한 번 활짝 웃으며 전의를 불태운다.
새 하얗게 타버릴 기세로 자신의 기예를 펼쳐낸다. 혼을 다한 온갖 휘영 찬란한 묘기들.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에구구, 여기서 잠깐 쉬자고. 늙으니 이야기 하나 하는 것도 힘들구먼.

 어엉? 뭐가 힘드냐고? 엄살 아니냐고? 네놈이 한 번 늙어봐라 이눔아!!!  

 에잉, 요새 젊은것들이란......

 하여튼간에 이렇게 광대와 공주님이 만났지.

 말 그대로 우연이었지? 이렇게 우연히 찾아왔을 때 필연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그러니 투덜거리지 말고 잘 적어둬, 인마.

 자아, 이렇게 광대는 무려 한 달이라는 시간을 얻고서 매일매일 공주님을 뵐 수 있었어.

 뭐, 공주님을 보는 것 은 매일 일정 시간마다 공주님 앞에서 묘기를 부렸을 때 뿐이지만 말이야.

 시간이 흐르고, 순식간에 한 달이 지나 광대의 밑천까지 다 들어냈을 때, 광대는 얼음공주님 다음으로
웃기는게 힘들다는, 10년이란 세월동안 웃는 것에 질려버린 왕과 그의 신하들, 하인 하녀들,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기사들마저 웃게 하는데 성공했어!!!

 대단하지? 정말 대단한 양반이지? 하지만, 그 양반이라도 한 명의 웃음을 되찾아 주는 데는 실패했다더라.

 그래, 단 한 명. 공주님의 웃음을 되찾아 주는 데는 실패했다고.

 웃음을 되찾은 왕은 광대에게 왕실광대로 남아줄 것을 부탁했지만, 광대는 공주를 웃기지 못했다는 절망과
자괴감에 왕의 부탁을 거절하고 성을 뛰쳐 나왔어.

 절망하며 성을 나온 광대. 광대의 실패로 이야기는 끝날것 같지만, 이 이야기는 아직 끝이 아니야.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하지? 궁금하겠지? 지금부터 이야기 해줄게. 귓구멍 파고 잘 들어.
 

 

 절망했다! 공주님을 웃기지 못한 나에게 실망했다!!!

 후우, '비장의 108개그'에 이어 '절대 금기 4종 세트'마저 실패하다니!!!

 내가 너무 쉽게 생각 했던 것 일까? 그런 것 일까?

 분명히 나라면 웃길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웃길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대실패!

 성안, 다른 사람의 웃음을 되찾아 준 것만 해도 실패는 아니겠지만, 주위의 갤러리만 웃기면 뭐하냐.
단 한사람. 사랑하는 공주님을 못 웃겼는데.....
 
 나오는 건 한숨이고, 들어오는 건 좌절뿐이랴.

 더 이상의 방법은 없을까?........

 터덜터덜, 휘적휘적, 광대가 힘없이 걸어간다. 축 처진 어깨가 안쓰럽도다.

 울상짓는 얼굴은 불쌍하게 보여야 하련만,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터덜터덜터덜.

 그러나 어느순간, 힘없이 걸어가던 광대가 걸음에 힘을 준다. 가슴을 활짝 폈다. 얼굴에 미소를 담았다.

 그리고, 광대는 다짐했다.

 포기하지 않아. 나는 포기하지 않아. 나는야 광대.

 남을 웃기는 것이 나의 본분.
 
 높으신 분을 조롱하는 것은 나의 특기.

 그러니, 단 한 사람도 울상 짖지 못하게 만들 꺼야.

 웃어라, 내가 대신 울어줄 거니.

 참아라, 내가 대신 조롱해주마.

 히죽히죽, 무언가를 떠올린 광대는 그 보무도 당당히, 걸음을 옮긴다.

 목적지는 서쪽! 검은 마녀가 살고 있는곳!

 공주님의 웃음을 되찾기 위해, 공주님을 웃게 하기 위해 내가 지금 간다!

 광대가 떠난 자리 웃음소리만 남도다.

 

 정면에 자리한 숲을 바라봤다.

 서쪽 끝. 1년 365일, 낮이고 밤이고 사시사철 짙은 안개로 뒤덮힌 곳. 그리고 공주님의 웃음을 빼앗아간
'서쪽의 검은 마녀'가 사는 곳.  

 불로만 이루어진 강을 건너, 저 아래 지옥이라도 있을법한 심연의 구덩이를 지나, 온갖 위험 넘어서서,
나, 여기 왔노라! 보았노라! 그리고 이제 찾으리라!!!

 후으, 이곳까지 오는데 정말 고생했지. 아마 여기까지 온 건 내가 최초일걸?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실패한 이곳을 한 낱 광대가 어떻게 왔는지 묻지 마라, 광대의 트릭은 눈감아 주는 게
예의다.
 
 뭐, 덕분에 몸은 거덜거덜~ 마음은 너덜너덜~ 심신이 걸레 짝~☆

 크흠, 헛소리는 이제 그만. 어서 마녀를 만나러 가봐야지.

 상처입은 몸을 이끌고 휘적휘적 숲으로 걸어 들어간다. 안개를 가르며 나아간다.

 그러다 문득 드는 의문. '그런데 어떻게 마녀를 만난다지?'

 잠시 잊었던 사실에 광대는 걸음을 멈추고 끄응하는 작은 신음성을 내뱄는다.

 머리를 굴리고 굴리고 이리저리 굴려보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다시 그 위에 고민을 더해보지만 답이 나올 리가?

 이럴 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일념으로 앞으로 달려나가면 되는 일.

 응응, 그러니 일단은 전진이다!!

 끼긱끼긱, 상처투성이인 다리를 움직여 다시 한번 앞으로!! 앞으로!!!

 경쾌하게 춤을 추듯 안개속을 헤엄쳐 걸어가는 광대. 그 움직임, 실로 유쾌하도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헤에~? 이곳까지 온 인간이 다 있내??"

 안개 저 너머, 어딘가에서 듣기 좋은 미성이 들려온다. 그와 동시에 안개가 걷히고 나타난 마녀..... 마녀??

 숲,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가운데 마련된 공터. 안개 한점 없이 깨끗한 그곳에 웬 글래머 아가씨가 방글방글
웃으며 서 있다.

 온통 칠흑색. 심연의 어둠을 연상시키는 흑안. 검디검은 긴 생머리에 챙 넓고 끝이 뾰족한 검은 모자,
굽 높은 검은 구두와 수수한 검은 원피스. 그나마 다른 색을 찾자면 한겨울의 눈을 연상케 하는 새하얀 피부뿐.

 뭐냐, 루즈도 검정이냐? 거참, 검정색 좋아하는 아가씨구먼. 이라는 생각도 잠시, 퍼뜩 든 생각에
그 아가씨를 향해 질문했다.

 "예에.....그러니까...... 마녀..... 이십니까?"

 "네가 말하는 마녀가 '서쪽의 검은 마녀'를 말한다면 Yes─ 라고 답하지."

 "........"

 허허... 거참, 마녀는 모두 늙고 추악하게 생겼다─ 라는 상식을 깨는 마녀구먼.

 환히 웃는 얼굴로 수긍하는 마녀를, 여기까지 온 목적마저 잊고 뻥 진 얼굴로 바라본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마녀의 외모에 넋이 나갔다고 하는 게 옳겠지.

 멍하니 마녀의 얼굴을 바라보기를 수 초, 이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애당초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뭐냐! 공주님의 웃음을 되찾아 주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그러니 당당히 소리쳐라!! 나의 목적을!!!

 "마녀님! 저랑 사귀어 주십시오!!!"

 "싫어."

 즉답이냐! 아니 그전에, 나는 뭐라고 소리친거냐앗!!!

 광대는 헛소리를 내뱉은 자신의 입을 한 대 쥐어박아 준 후,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이번에야말로!!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마녀님!! 공주님의 웃음을 되돌려 주십시오!"

 "그래? 그럼, 네 웃음을 내놔."

 "드,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

 잠까안!! 이건 무슨 만담이냐!?!!

 분위기에 휩쓸린 거냐? 그런 거냐??!

 이놈의 입! 이놈이 하라는 말은 안 하고!!

 짐짓 화난 듯, 아니, 진짜로 화난 듯 자신의 입을 퍽퍽 치는 광대.

 마녀는 그런 광대가 재밌다는 듯 쿡쿡 웃고는 정색하며 말했다.

 "뭐, 농담이고. 너의 웃음을 내놔, 그러면 공주의 웃음을 되돌려 주지."

 그에 광대도 자신의 입을 때리던 것을 중지하고, 얼굴을 딱딱히 굳히며 생각했다.

 웃음을 내놔─라..... 방금전에는 분위기에 휩쓸려 반사적으로 준다고는 말했지만,
이것은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다.

 자고로, 남을 웃기려면 자신이 먼저 웃을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남을 웃겨야 하는 광대가 웃을 법을 모른다면 어찌하는가?!

 이것은 광대 생활 때려치우라는 소리인가??!!!

 뭐, 그렇지만........

 "까짓 거, 드리지요."

 씨익─ 웃으며 말하는 광대. 그러자 마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외다'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헤에~ 저기, 그렇게까지 해서 공주의 웃음을 되찾을 필요가 있어? 어차피 공주는 네가 이런 고생을 한 것도
모를 텐데?"
 
 "뭐, 그렇겠죠. 높으신 분이 천한 것들의 고생을 알 리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단지 제가 그러고 싶기 때문에,
공주님을 사랑해 버린 것 때문이지요."

 "사랑에 이 한 몸 불태운다─인가? 대단한 로맨티스트군."

 비아냥거리는 기색 없이, 순수히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마녀는 말을 이었다.

 "좋아, 그렇다면 소원대로 너의 웃음과 공주의 웃음을 바꿔주지.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그리고 마녀는 팔을 광대 쪽으로 쭉 뻗으며 덧붙였다.

 "그럼, 언젠가 또 보자고. 광대─."

 말이 끝남과 동시에 터지는 강렬한 섬광. 사방팔방으로 날뛰는 광풍. 바람 찢기는 소리 사이로 마녀의
깔깔거리는 웃음이 들려왔다.
 
 상처입은 몸은 바람결에 휘청휘청~ 눈을 가리며 휘몰아치는 바람에 밀려나지 않도록 몸을 지탱했다.

 잠시 후, 빛은 소리없이 가라앉고, 바람이 떠나간 자리에 마녀는 온데간데없다. 그 대신 활짝 웃는, 언뜻 보면
슬피 웃는 가면이 하나.

 얼떨떨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던 광대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서 이제 자신은 웃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후회는 안 한다. 이것으로 공주님이 웃음을 되찾게 됐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고개를 잠시 가로젓던 광대는, 땅에 떨어진 가면을 주워 더는 웃을 수 없는 얼굴 위에 거짓 웃음을 덧씌운 후
발길을 돌려 지금까지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언제나처럼 가볍게, 가볍게, 경쾌하게.

 하지만, 그 발걸음에는 더이상 기쁨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후, 광대는 곧바로 하얀 왕국의 수도로 돌아갔지.

 다시는 다가가지 못할 공주님의 웃음을 먼발치에서라도 보려고 말이야.

 온갖 상처를 입은 너덜너덜한 몸으로 마침내 하얀 왕국의 수도에 도착한 광대가 무엇을 봤는지 알아?

 바로 수많은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진행되는 공주와 이웃나라 왕자님의 결혼식, 광대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시킬 정도로 사랑하던 공주님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봤다 이거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 셈이지 뭐.

 아주 젠장 할 일이야. 젠장 할 일이고 말고......

 쯧, 하여튼 광대 그 사람도 자신이 보상받지 못할 것이라고, 괜찮다고 스스로 각오는 했지만,
충격이 컸었나 봐.

 혼이 빠진 듯, 망연히 서서 공주님과 이웃나라 왕자님의 결혼식을 지켜보던 광대.

 그는 실로 기쁜 듯, 환히 웃는 공주님을 보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뭐, 내가 알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렇게 가만히 공주님의 결혼식을, 공주님의 환한 웃음을 지켜보던 광대는, 불현듯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
시작했어.
 
 보는 사람 모두를 즐겁게 하는, 한편으로는 슬프게 하는 그런 춤과 노래를......

 그리고 그는 그대로 떠나갔대. 어디일지 모를 곳으로.

 자, 이것으로 웃지 못하는 광대의 이야기는 끝이야.

 재밌었지? 그렇게 재미있었다는 얼굴로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아하핫, 알았어, 알았다고. 진정해.

 으응? 그런데 광대는 그 후에 어떻게 됬냐고?

 글쎄, 웃지 못하는 광대라 불리며 이리저리 떠돌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나도 정확히는 몰라.

 뭐, 어딘가에서 또 남을 웃기고 있을지 모르지.

 .........

 후우, 쉴 만큼 쉬었겠다. 이야기도 끝났겠다. 이제 떠날시간이군.    

 그럼 다음에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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